[오이카게] 남은 이와 떠난 이
오이카게 전력 60분 주제 : 낙원
낙원. 낙원이었다. 그곳은 우리의 낙원. 이제 나는 남아있고, 너는 떠났지. 그리고 다시 우리는 만났어. 낙원의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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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운다. 피비린내가 진하다. 그 냄새는 너무 역했다. 그러나 누구도 코를 막지 않았다. 지금 냄새 따위에 무너졌다가는, 목이 날아가 버리리라. 그래,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전장은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 모두 피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려 하는 곳.
"..기억해요?"
"응, 당연히."
그리고 그들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미소 지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미소 짓지 않았다. 둘이 서로에게 겨눈 검이 은빛으로 빛났다. 눈부신 날이다. 시체를 파먹으려는 까마귀들이 이따금 해를 가리는 것만 빼면.
둘의 검이,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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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렴, 이쪽은 오이카와 토오루. 너보다 나이가 2살 많지만, 그래도 또래 아이니까 친하게 지내렴, 토비오.”
갈색머리, 갈색 눈의 아름다운 소년의 눈이 깜빡거렸다. 황비는 어색해 보이는 두 아이의 손을 이어주었다. 둘의 손이 닿았다. 검은 머리, 푸른 눈의 소년이었다.
“토비오..?”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는 웃었다. 외동이었던 황자에게는 무척이나 외롭기만 하던 황궁이었다. 그랬기에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의 오이카와에게 잘 짓지 않던 미소를 지어보였던 것이다.
“이제 친하게 지내렴.”
카게야마의 어머니는 그렇게 속삭였다. 그렇지만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황비의 속삭임 같은 것은 사실 의미가 없었다. 둘은 직감했던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질 자신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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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생각보다 심심하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침대에 누워 몸을 쭉 폈다. 하도 돌아다니면서 놀았는데, 지치지도 않은 걸까. 카게야마는 그런 그를 가만히 보여 피식, 웃었다.
“토비오, 너만 아는 그런 거 없어?”
“으음, 그러면 비밀정원, 가볼래요?”
“그런 곳이 있어?”
카게야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유일한 아들을 위해 꾸며놓은 곳이었다. 그랬기에 꽤나 비밀스러우면서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카게야마는 그렇지만 딱히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그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꽤나 무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와, 여기 무척 좋다!”
이제부터는 아닐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정원의 상쾌한 공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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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씨?”
“근데, 토비오, 너는 왜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오이카와는 황궁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제국에서 제일 유력한 가문인 오이카와 가문의 차남, 오이카와 토오루. 그리고 카게야마 토비오는, 황제의 적장자이자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첫 만남 이후,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유일한 친구라고 해야 할까.
“그냥, 그래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시니까요.”
카게야마는 그렇게 웃으며 답했다. 오이카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 같은 게 아니라고. 친구는 무슨. 그리고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따뜻했다.
-
“황태자 전하.”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요.”
카게야마는 책봉식을 받은 날 오이카와에게 안겨 그렇게 속삭였다. 장난스레 자신에게 존칭을 쓰는 오이카와가 괜스레 얄미웠다. 이제 멀어지면 어쩌지. 카게야마는 그런 걱정도 했다. 황태자비 이야기도 들려오고. 아, 어쩌지.
그렇지만 오이카와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른 걱정이었다. 요즘 따라 자신의 가문의 움직임이 꽤나 수상했다. 오이카와의 가문은 꽤 크고 힘이 세었다. 아직 황실에는 넘보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오이카와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곧 우리의 일상이, 깨져버릴지도 몰라, 토비오. 오이카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카게야마를 품에서 떼어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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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에 불이 피어올랐다. 복도가 피로 물들었다. 모두가 황태자를 찾고 있었다. 황비와 황제의 목은 이미 버려져 굴러다녔고, 모두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황태자를 찾아 칼을 들었다. 그리고 오이카와, 아니 토오루가 있었다.
“....도망쳐. 토비오!“
그럴 순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내가 이곳을 지켜내야 한다고 부르짖는 카게야마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가야해, 너는 살아야해. 오이카와는 그렇게 소리쳤다. 머지않아 들킬지도 몰라. 오이카와의 눈이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부디 살아달라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도망쳤다.
황성은 붉게 타올랐고, 근처의 숲은 재가 되었다. 오이카와는 그 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의 낙원이, 타올라버렸어. 토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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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남은 황태자는, 오이카와의 가문이 꽂은 새 깃발을 태워버리러 다시 황성으로 돌아왔다. 장성한 황태자는 칼을 들고 군사를 이끌고, 백마를 몰았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황성에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오이카와는 칼을 잡기로 했다. 그리고 흑마를 골랐다. 너를 볼 시간이야, 오이카와는 타버린 정원을 생각했다. 그리고 불타오르던 황성을 생각했다. 그리고, 카게야마를 생각했다.
말이 울었다. 오이카와는 채찍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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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게야마의 검 날이, 오이카와의 심장을 찔렀다. 검이 오이카와의 피로 잔뜩 적셔졌다. 카게야마는 보지 않으려했으나, 그 촉감은 이미 그의 손으로 전해져들어왔다.
“안녕.”
오이카와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겼다. 아, 나의 낙원.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힐끗 바라보고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는 말에 올랐다. 희디 흰 백마였다. 카게야마는 이를 악물었다. 백마가 울었다. 그리고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렸다.
아, 너가 멀다.
오이카와는 손을 뻗었다. 잡히지 않았다. 잡히지 않네... 잡히지 않아. 오이카와는 시야가 점점 희뿌예지는 것을 느꼈다. 말발굽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즈음, 오이카와의 눈은 더이상 감기지도, 뜨이지도 않았다.
그저, 너가 떠난 자리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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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인데, 네가 떠난 이곳은 전혀 낙원이 아니었어. 내가 그곳을 낙원이라고 불렀던 까닭은 그저, 네가 존재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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