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솔직하지 못한 밤
오이카게 전력 60분 주제 : [크리스마스 이브]
띵동, 인터폰이 소리를 냈다. 낯설지 않은 인영이 비쳤다.
"싸웠어?"
"예."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집 문을 두드렸다. 오이카와는 문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반복되어 왔다. 단 하나 특별한 것은, 오늘의 날짜 정도였다. 카게야마는 신발을 벗었다. 맨발이었다. 오이카와는 꽤나 추웠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늘은 코코아를 타 줄 생각이었다.. 추운 날이었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집은 창이 컸다. 그 창으로 비치는 세상에는, 흰 눈이 세상을 덮고 있다. 물이 다 끓은 모양이었다. 커피포트의 등이 꺼졌다. 오이카와는 포트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코코아 분말을 부어놓은 흰색 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두 잔에 적당히 중간 정도 붓고 난 뒤에 오이카와는 커피포트의 물을 싱크대에 버렸다.
"코코아입니까?"
"응, 토비오 입맛이 그거잖아?"
카게야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엌에서 오이카와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살짝 놀리듯이 말을 했는데, 카게야마는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의 반응이 꽤나 흥미로웠다. 예상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원하던 것은 아닌 반응.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그런 존재였다.
"오이카와씨는요?"
"나도 물론, 코코아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찾아오던 모든 날들에 항상 같은 음료를 내어와서 마셨다. 겨울에 들어서던 순간부터는 따뜻한 음료를 끓여주고 있었다. 그리 자주 오지 않는 손님을 위해서, 오이카와는 여러가지 차 종류들과 타줄 만한 음료들을 구비해놓았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평소에는 잘 타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두 잔에 우유를 살짝 부었다. 그리고는 스푼으로 코코아를 다 저어서, 살짝 맛을 보았다. 적당히 달았다. 오이카와는 다 됐어, 라고 말했다.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코코아 잔을 양손으로 들었다. 잔을 만지면 뜨거울 텐데,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하며 컵의 손잡이를 한손으로 잡았다.
카게야마는 배구를 보고 있었다. 요즘은 배구시즌이니 카게야마에게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좀 다른 걸 봐도 좋았을 텐데, 오이카와는 코코아를 거실 탁자에 내려놓으며 리모콘을 들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아?"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모르지는 않구나, 오이카와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채널을 돌렸다. 여러 채널들에서 다양한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크리마스 이브였다. 오이카와는 창밖을 힐끗 봤다. 계속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겠네, 오이카와는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배구 채널을 돌려버린 이후 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오이카와는 그 표정이 너무나도 잘 읽혀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카게야마는 그가 웃는 것이 틀어놓은 시답잖은 예능 프로그램 때문일거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오이카와는 그 말이 무언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 밤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 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아, 토비오 멍청이. 예? 오이카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소파에 축 늘어졌다. 코코아는 식어버렸다. 오이카와는 깜빡했네, 하면서 식은 코코아를 마셨다. 카게야마의 잔은 이미 비워져있었다.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할까, 오이카와는 잔을 잡은 오른손 중지손가락으로 잔을 톡톡 쳤다.
"원래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연인과 함께 맞는 건데…"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의 연인을 생각한 걸까. 그래, 연인. 코코아가 바닥을 드러냈다. 오이카와는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오이카와는 떠올려보았다. 그날 카게야마는 고백을 받았다고 했고, 그래서 받아들였어? 라는 오이카와의 대답에 그렇다고 했다. 오이카와는 허탈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왜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싸우면 나를 찾아와. 문을 열어줄테니.
카게야마는 그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오이카와는 헤어지면 나에게 오라는 뜻이라고 해본 말이었지만, 카게야마는 그저 그 뜻으로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카게야마는 어느날, 오이카와의 집 문을 두드렸다. 오이카와씨, 저희 싸웠어요. 오이카와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 토비오. 그 뒤로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자주 찾아왔다. 연인 사이는 꽤나 삐걱거리는 듯 했다. 잘 맞을 줄 알았는데, 오이카와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평화로운 침묵의 시간이었다. 티비 소리만이 가득 채웠다. 시간은 그저 흘러갔다. 카게야마는 소파 왼쪽에 기대 티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 아니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만졌다. 카게야마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오이카와는 그 감촉이 좋았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짜증내는 듯한 반응도 좋았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살짝 헝크리는 걸 좋아했다. 오이카와는 티비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카게야마도 그것은 마찬가지 일텐데,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쳐다보지 않으려는 듯이 티비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밖에는 아직도 눈이 오려나, 어두워져서 더 이상은 멀리서는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일어나서 창으로 다가갔다. 눈발이 아직도 굵었다. 내일 카게야마가 돌아가는 길은, 눈으로 가득 덮여져 있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는 아직도 그러고 있었다.
"오이카와씨, 방에 안 들어가시나요?"
카게야마는 그렇게 물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찾아오면 항상 그를 소파에서 재우고, 자신은 방의 침대에서 잤다. 그것이 그들의 거리였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오늘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아니, 나도 오늘은 여기서 잘거야."
오이카와는 탁자를 치웠다. 그리고 이불을 깔았다. 카게야마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조금 솔직해지면 좋을텐데,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토비오, 이건 너 이불. 오이카와는 이불을 휙 던졌다. 카게야마는 붙잡고 난 뒤 눈을 껌뻑거렸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재워주셔서."
카게야마는 두번째로 자신의 집을 두드리던 그 때 이후로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오이카와는 오늘따라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란 이불을 감고 소파에 누운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매일 재워줄 수도 있어."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불에 가려진 얼굴은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오이카와는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는 불을 끌 시간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마주하며 바라보던 공간은 곧 암흑으로 뒤덮였다. 오이카와는 이불을 찾아 누웠다. 좀체 암흑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이불을 뒤집어쓴채 잔 듯했다. 오이카와는 아쉬웠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먼저 잠이 들면, 그 얼굴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창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몇시일까, 12시가 되어 이미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으려나? 그렇지만 오이카와는 확인하지 않았다. 카게야마와의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멀리서 종이 울리는 것이 어렴풋이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
빛이 밝았다. 아침 햇살은 꽤나 따가웠다. 넓은 창은 햇빛을 가득 들였다. 오이카와는 먼저 일어나 물을 들이마셨다.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창밖에는 눈이 가득하다. 카게야마도 머지 않아 눈을 떴다. 오이카와는 물을 건넸다. 카게야마는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졸린 듯한 눈을 비빈 뒤 머리를 다듬는다.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오이카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곧 돌아올 말을 알기 때문이다.
"저, 이제 가겠습니다. 오이카와씨."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시간이 왜 이리도 빠를까. 너가 맨발로 우리집에 발을 딛던 때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말이야. 오이카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평소와는 다른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지 말라고, 계속 여기 있어도 좋다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카게야마는 왜냐고 물어 오겠지, 오이카와는 대답할 수 없을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말해온다면 좋을텐데.
"잘가."
"감사합니다."
오이카와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잡았다. 킨 것은 이틀 전에 온 문자였다. 이미 확인한 문자다. 그렇지만 한번 더 보고 싶었다. 지금 이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었다.
헤어졌어요. 오늘.
그것은 카게야마의 연인, 아니 옛 연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번, 카게야마와 함께 보낸 밤을 되새겼다. 그러니까, 단 둘이 보낸 크리스마스 이브 밤을. 카게야마는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집을 찾았을지. 아아, 솔직하지 못한 토비오. 오이카와는 미소지었다. 꽤나 환한 미소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솔직하게 말해올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
그리고 카게야마는, 또 다시 오이카와 집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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