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길고 긴 밤의 그늘 속에서
인간 오이카와 × 밤의 신 카게야마
*카게야마 토비오의 생일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이전에 쓰여진 아무도 찾지 않는 새벽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하루에 어둠이 드리울 때면 일상처럼 그의 방을 찾았다. 오이카와는 항상 어둠 속에 존재하는 그를 위해 방의 빛을 밝히지 않은 채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채로, 항상 둘은 그들만의 어둠을 지새웠다.
“당신은 밤의 신이잖아?”
어느 날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런 질문을 해왔다. 카게야마는 그 당연한 명제에 새삼스럽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머리를 갸우뚱거리고 카게야마를 바라본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빤히 응시하며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새벽이 깊다. 밤은 이제 오이카와에게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입을 떼어, 내일은 꼭, 어둠이 내리는 순간 바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도야 쉽지만.”
카게야마는 일단 순순히 대답했지만, 의아함이 목소리에 가득 묻어났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몹시 입 밖으로 내뱉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겨우 입술을 꾹 눌러 담았다. 원래 스포일러가 없는 편이 본편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오이카와는 침대에 털썩 퍼질러 누워버렸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가볍게 맞추었다. 그런 카게야마의 푸른 눈을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밤의 신은 이 땅에 드리워있던 어둠을 거두었다.
밤이 잦아들고 낮이 찾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오늘 다시 그가 어둠을 드리우러 오는 순간이 기다려져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도 별로 남지 않았는걸, 오이카와는 일단 짧은 잠을 청하기로 했다.
-
“…이게 무슨?”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황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꽤나 멍청해 보였을 거 같은데. 카게야마는 그렇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겐 다행이게도 오이카와는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입으로 바람을 불라고 말했다. 입으로 호-하는 거라며 직접 시범까지 보였다. 케이크는 짙은 갈색, 아마도 다크 초콜릿으로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꽂힌 여러 개의 촛불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순간 오이카와가 자신을 놀리는 건가 고민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거라 보는 건가? 지금 구시대적인 밤의 신님을 위한 신문물 교육이라도 하는 건가? 같은 시답잖은 고민. 하지만 오이카와의 표정은 전혀 그런 걸 담은 눈으로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조심스럽게 오이카와의 시범을 따라했다. 몇 개의 불이 꺼지기는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오이카와는 더 세게 불라며 격려 비슷한 말을 계속 건넸다. 카게야마는 너무 어색했지만 여튼 최선을 다했고, 카게야마의 미숙한 바람 불기로 인해 몇 번의 시도 끝에야 촛불이 꺼졌을 때, 오이카와는 박수를 쳤다. 짝짝짝- 그리고,
“카게야마.”
이어진 말은, 카게야마의 생일이 오늘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그제야 오이카와의 의도를 파악한 카게야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이카와는 왜 웃는 거냐고 소리치며, 진짜로 생일 선물까지 준비해두었다고 말했다. 마음에 안드냐는 오이카와에 물음에 카게야마는 좋아, 좋아. 당연히, 라고 속삭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밤의 신은 그렇게 환하게 웃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오이카와는 그의 활짝 웃는 표정을 보고 뿌듯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카게야마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초는 왜 큰 초 4개에 작은 거 6개야?”
오이카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이카와는 살짝 떨리는 말소리로, 자신 특유의 3인칭도 덧붙여가며 자신이 그 초의 개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것이 지구의 나이를 본 딴것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카게야마는 이번엔 소리를 내서 웃기까지 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비웃음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밤의 신은 언제나 표정 변화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의 그런 모습이 반가울 뿐이었다.
오늘은 밤이 제일 긴 날.
만약에 진짜 생일을 모른다 하더라도 내가 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어-, 라며 속삭이는 오이카와의 목소리를 귀에 조심스레 차곡차곡 담으면서, 정말 오이카와다운 생각이라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둘이 그렇게 옥신각신 하던 순간이 지나갈 무렵, 카게야마는 어두워진 밤하늘을 힐끗 쳐다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좋아했다. 그것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빛과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도 카게야마의 시선을 좇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이 참으로 고요하게도 세상을 덮어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선물까지 준비했다던 오이카와의 말을 기억했다. 그리고 선물은 어디 있냐며 물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방을 두리번거리는 카게야마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못 찾는다는 뜻이었다. 카게야마는 괜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미소를 금치 못했다.
오이카와는 꽤 고민을 했다. 카게야마는 신이었고, 그저 어둠을 뿌리고 거두는 일을 할 뿐이었다. 자신과 달리 필요한 것은 없는 존재였고 자신이 준 무언가를 받아 보관할 공간도 가지고 있기는 할까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마침내 선택하여 고른 것은-
“토비오.”
그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이름을 선물하기로 했다. 카게야마는 처음에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눈만 깜빡거리다가, 곧 이해하고는 정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이카와는 오늘 카게야마의 웃음을 이렇게 많이 보다니,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속삭였다. 이제 당신은 카게야마 토비오, 내가 지어준 이름을 영원히 안고 가주기를. 그렇기에 부디 이 선물을 거절하지 말아달라, 는 간절함이 너무 담겨서 그가 부담스러워할까봐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속으로 삼키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필멸의 인간임을 잘 알았다. 그러나 밤의 신은 영원을 살아갈 것이다. 오이카와는 그랬기에 자신의 선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당신은 어떨까? 오이카와는 가슴이 떨려 내려놓은 시선을 올려 카게야마의 밤하늘과 같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아, 그 안에 환희가 가득하다.
카게야마는 한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응, 이제 나에게도 이름이 있는 거야. 영원히 가져갈게. 꼭. 오이카와는 자신의 선물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가슴이 떨렸다. 밤의 신은 이름을 지어준 이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카게야마는 그저 입술로 내뱉은 세 음절일 뿐인 그 선물의 크기가 영원의 무게와도 같게 느껴져서, 그 소중함에 가슴이 떨렸다.
눈이 차곡차곡 내리고, 제일 긴 밤이 흘러가고 짙어가고 있었다. 둘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오이카와는 시선을 돌렸다. 창틀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흰 눈으로 덮여져 겨울의 밤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려주는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나는 원래 여름을 좋아했어."
그렇게 자신의 기호를 표현하는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는 어떻게 답을 주어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밤의 신에게는 계절이 무의미하기에 딱히 뭐 좋고 나쁘다를 따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다음 말이 자신의 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로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말을 하지 않고 오이카와의 입술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렇지만 이제는 겨울이 좋아."
카게야마는 자신의 눈을 밝은 표정으로 응시하면서 바라보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눈부시다. 밤의 신은 뜨거운 태양빛을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오이카와의 그 미소가 마치 빛과 같다고 생각했다.
"당신과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
그 말만을 기다린 듯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성큼 다갔다. 미소로 가득 찼던 오이카와의 표정이 살짝 옅어졌다. 둘이 눈빛이 마주친다. 그리고, 둘 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각자의 얼굴을 내밀어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이 꽤나 격렬하나, 그런 둘의 모습이란 어째서인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는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으나 인간의 숨이란 언젠가 차오르기 마련이라 둘은 결국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득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뱉고 다시 들이쉬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카게야마는 길고 길 이 밤이 아까워졌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눈짓했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토오루, 토비오- 입술이 부드럽게 울리며 내뱉은 소리가 마치 서로 맞닿는 듯 하였다. 넓은 침대의 품은 푹신했고, 서로의 품은 더욱 따스했다.
하얀 눈으로 덮여 고요하기 그지없는 밤, 그들의 귀에 닿는 것은 서로의 소리뿐이었고, 눈에 닿는 것은 서로의 살결뿐이었으며, 닿는 것은 서로의 숨과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직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다 떠올라 이제 기울어갈 달 뿐이었다.
"오늘은, 밤이 무척 길거야."
밤의 신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밤의 신에게 이름을 선물한 인간은, 자신이 주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깊고 무겁게 속삭였다.
"응, 토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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