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지각
*이글은 존잘님이 되고 싶다(@yhs981126)님과 김연필(@pencillobessuga)님의 소재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와이즈미가 부활동에 늦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물론 지금 일어난 일이니, 그가 원래 지각을 하니 안 하니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이미 체육관에 와있었다. 오이카와는 지금 이와이즈미의 행방을 물어오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저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상태였다. 어딜 간 거야, 이와쨩. 오이카와는 잠시 누가 부른다며 나간 뒤로 보이지 않는 이와이즈미를 계속 기다렸다.
이와이즈미는 부활동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 되어가는 데도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못마땅함을 얼굴에 잔뜩 티를 내면서 부활동 시간을 보냈다. 그랬기 때문에 오이카와가 지금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이 아마도 지금 보이지 않는 그 때문이라는 것쯤도. 뭐, 이런 일은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결국 그날 부활동 시간이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잔뜩 화가 난 채로 체육관을 나갔다. 그가 제일 마지막으로 체육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언제나 같이 집에 갔으니까. 그래, 오늘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이카와의 짜증이 가라앉은 건 아니었다.
"이와쨩, 오늘 왜 늦었어?"
대답하지 않는다. 뜸을 들이는 건가. 미안해서? 오이카와는 그런가 싶어서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시선을 주었지만 영 그런 얼굴은 아니었다. 살짝 상기된 채로, 오이카와의 말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오이카와는 가라앉았던 짜증이 더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오이카와. 나 말할게 있어."
이와이즈미는 살짝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이카와는 순간, 그 표정을 보면서 가슴이 내려앉았다. 다음 말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입을 열었다.
"나, 여자 친구 생겼어."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뭐, 다시 말해봐. 라고 하고라도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전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조금 수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미소를 참을 수 없는 듯 자꾸 입 꼬리를 올렸다. 오이카와는 차갑게 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순간, 내가 왜 이런 반응을 하고 있지, 라고 고민했다.
"오늘 고백 받고 첫 데이트를 했거든, 내가 저번에 좀 맘에 든다고 했던 여자애였어. 부활동 못가서 미안해, 그런데 걔가…"
그렇게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누구보다 가깝고 누구보다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와 대해 털어놓을 뿐이었고, 그것이 이미 진전되어 서로 쌍방향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이와이즈미에게는 정말로 당연한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와이즈미에게 어떤 원망을 쏟아내 보았자 그것은 그저 의미 없는 것이었고 또한 괜히 둘의 관계를 망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그가 원망을 한단 말인가? 그에게 그럴 자격까지는 없는데. 오이카와는 자신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 어, 오이카와, 듣고 있냐?"
어, 어. 듣고 있지. 오이카와는 그렇게 대답하며 애써 미소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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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와이즈미는 바빴다. 당연히 오이카와와 보내던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이 있는 시간도 대부분 이와이즈미가 연애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채워졌다. 그러는 시간을 보내면서 오이카와는 점점, 점점 이와이즈미를 잃어간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인 이와이즈미는 그저 한 여자아이의 남자친구가 되어갈 뿐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이카와는, 자신에게도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이와이즈미에게 결국 소리를 질렀다. 참던 것이 폭발하듯 그렇게 터져 나왔다.
"그런 거에 왜 참견하려고 들어? 내가 이와쨩보다 여자가 더 없을 것 같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오이카와…"
"그리고 말이야, 나, 그 이야기 전혀 듣기 싫어! 제발 꼴사납게 연애하는 건 혼자 알아서 하란 말야!"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가, 곧 자신이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땐 이미 늦어서, 이와이즈미는 그로부터 등을 돌려버렸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에게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그저 오이카와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채로 그 뒷모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마음이 풀리지 않는 분으로 가득해서 몸은 계속 떨리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이를 악물었다.
-
달라진 건 그다지 없었다. 물론 겉으로만 그랬다. 이와이즈미는 더 이상 여자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머지 대화를 했다. 원래 평소에 하던 이야기들. 오이카와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해나갔다. 오이카와는 처음에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 지긋지긋한 얘기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이와이즈미가 자기와 없을 때 하던 일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불안과 초조로 그의 머릿속이 가득 차버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연애이야기 하지 말라는 거 취소할게,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오이카와는 속으로 삭이고 또 삼켰다.
오이카와는 의문이 들었다. 이게 그저 친구를 대하는 감정이던가? 내가 삼키고 삭이는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이던가? 정말로 그냥, 친구에 대한 같잖은 독점욕일 뿐인가?
오이카와는 상황 판단이 빠른 남자였고 또한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아차릴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만은 예외였던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한번 눈을 감고, 떠서 세상을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살짝 올리고 눈을 감은 뒤 한숨을 내뱉었다. 꽤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숨이었다.
아, 나는 이와쨩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건 질투이다. 그것은 욕심과, 분으로 가득 찬 감정이었다.
오이카와는 뒤늦게야 그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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