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 1
사람이 죽는 연도를 보는 오이카와 × 수명이 별로 남지않은 카게야마


오이카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는 처음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후에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그 비밀을 털어놓을 일이 없을 거라 결론 내렸다. 그것은 유쾌하거나, 웃음이 나오는 비밀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쉽게 믿어줄만한 종류의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얻는 건, 그저 약간의 후련함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오이카와는 비밀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15년동안 누구에게도 말해지지 않았으며 다른 누구도 그런 비밀을 오이카와가 갖고 있을거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상상하기에는 너무 흔치 않은 종류의 비밀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사람이 언제 죽는 지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있을 때 슥 훑으면 그 모든 이들의 죽는 순간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오이카와를 인식하여 바라보고, 오이카와도 그 상대를 알아채고 서로 바라보는 순간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마주하며 이야기 할때 그것은 얼굴 근처에서 떠다니면서 시야를 방해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에 이제는 익숙해진 오이카와는 더 이상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연도만 보여졌다. 오이카와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올해 죽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 이가 사실은 이틀 뒤에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을테니까. 이틀 뒤에 아, 그 사람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에 젖어들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오이카와는 섣달 그믐이 오면 옛날에 만났던 사람이 올해 죽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냥 없었으면 좋을텐데,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와쨩은 69년 후, 어머니는 38년 후, 아버지는 32년 후. 누나는 …"

섣달 그믐을 지내고 새해가 시작되면 오이카와는 그렇게 소중한 이들의 남은 연도를 세보고는 했다. 점점 줄어드는 햇수에 가끔은 공허를 느꼈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이따금 느끼는 궁금증. 나는 언제까지 살아있을까. 나는 다른 이들의 죽음을 볼 수 있을까. 오이카와는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며 설레하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티비를 바라보고는 했다. 아아, 해가 지나고 있구나. 그렇게 오이카와 토오루는 16살이 되었다.

다행히도 그의 주변인들 중에서는 단명하는 이는 없었다. 알고 친한이들 중에서 머지 않아 죽을 사람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으며 대부분이 장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짧은 삶은 살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 빌어먹을 능력을 오이카와가 저주까지는 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곧 죽을 이의 연도를 볼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런 운명을 가진 이를 신경 쓰지 않는 법을 오이카와는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


배구공이 바닥에 튕기는 소리, 운동화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부원들이 서로에게 고함지르는 소리, 여기 저기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 문을 다 열지도 않았는데 온갖 소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오늘 신입 부원들 들어오는 첫날 아니었나? 어휴, 신입생들 앞에서 잘들 놀고 계시네요."

오이카와는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분위기에 혀를 차며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오늘 분명 신입 부원들이 들어오기로 했는데, 어디 있지? 오이카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런 오이카와에게 누군가가 다가온다. 낯선 얼굴인데, 오이카와는 살짝 그 아이를 흘겨보며 신입생일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 오이카와는 놀란 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
"저 아키야마 초등학교 출신이고 올해 키타가와 제1 중학교에 들어온 1학년입니다! 주 포지션은 세터입니다! 저는 정말 배구를 잘 하고 싶습니다! 또 여기 세터이신 오이카와 선배님의 실력이 굉장하다고 들었습…"

줄줄 자신의 소개를 늘어놓는 1학년 아이. 아이는 검고 또 새까만 머리에 짙은 눈을 하고 있었고, 열정과 동경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오이카와에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그런 열정 넘치는 신입생에게 미소를 지어주면서, 그래 후배님, 하며 말을 걸어 주었을 테고, 또한 자기를 아는 아이를 만났다는 것에 반가움을 느꼈을 터이며 또한 시키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늘어놓는 후배님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었다. 그지만 지금의 오이카와는 그저  그 후배님을, 그니까 카게야마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그런 오이카와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게야마는 그저 빛나는 눈으로 자기에 대한 소개를 줄줄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어, 오이카와상?"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신이 준비한 그 장황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서야 알아차린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에게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자 그 몇 분간의 눈 맞춤은 끝이 났다. 

"어.. 그래. 안녕? 토비오라고 그랬지? 나중에 신입생 소개할 때 다시 보자구!"

그제야 카게야마에서 떼지 못하던 시선을 돌리게 된 오이카와는 바로 뒤를 돌아버렸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오이카와에게 그런 동경에 가득 찬 시선 같은 건 사실, 들어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기를 바라며 카게야마의 눈을 그렇게 응시했지만, 그가 원한대로 숫자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아이는, 3년 후에 죽는다.

'저 후배님이,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했나, 3년 후에 죽는다고…'

껄끄러워. 오이카와는 죽음이 머지않은 소년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죽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오이카와의 머릿속이 젖어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카게야마는 자기가 외운 자기소개를 완벽하게 해냈다는 뿌듯함에 가득 차 있었으리라.

그 뒤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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