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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붉은 자국

HAEY 2017. 1. 21. 23:04
[오이카게] 붉은 자국
*둘 다 안 멀쩡합니다.
*과거 날조 있습니다.
*급전개.

"뱀파이어라고 불리지만 그거, 일종의 병이야."

오이카와는 붉은 색의 음료를 쭉쭉 빨며 중얼거렸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가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상대는 다름아닌 카게야마였다. 카게야마는 그의 이야기를 빤히 듣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매체는 진짜 거짓말이고, 특히 햇빛, 그리고 신체랑 어쩌구 하는거 다 믿지 마라. 카게야마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니까 그런 거, 사실 그냥 피 냄새를 맡으면 충동을 느끼는 거야, 먹고 싶은. 오이카와는 계속 중얼거리 듯 설명했다. 저가 왜 이런 걸 설명하고 있어야하는 지 꽤나 못마땅한 듯 했지만, 그걸 듣는 카게야마의 표정은 꽤나 밝았다. 그러니까... 피를 먹고 살아야하긴 하는데, 딱히 그것 빼면 다른 건 없다고. 애초에 그냥 인간 신체라... 눈 돌아가도 엄청 위험할 건 없고. 오이카와는 대충 그렇게 설명을 마쳤다. 곧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얘한테 들키다니 운도 없지. 라고 오이카와가 생각하고 있을 때에, 카게야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다, 미소였다. 오이카와는 그런 그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왜 웃어, 토비오쨩. 그렇게 퉁명스럽게 뱉어낸 한마디에 카게야마는 기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상이, 저에게만 그런 비밀을 얘기해 주신 거잖아요."

오이카와의 눈이 조금 커지고, 곧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마울지도. 비밀을 발설하진 않겠다는 거니까. 하아, 진짜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야, 토비오쨩 앞에서 이러는 거 굉장히 기분 나빠. 저는 좋습니다. 닥쳐, 토비오쨩.

그렇게 이어간 대화 속에서,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어야하는 것은 누구였을까.

-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은 카게야마가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다. 커터칼에 베인 것인지, 대체 어떻게 베인 것인지 종아리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이카와는 그 향을 맡자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고, 결국 설명을 필요로 하는 상황까지 놓인 것이었다.

거참, 토비오는 왜 피를 흘려서는....

오이카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들키고 싶지 않던 사람에게 들켜버린 비밀은 마치 치부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괜찮겠지, 괜찮겠지. 이제는 걔도 나 때문에 조심할거야. 그렇게 생각해버리고는 이불 속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

카게야마 토비오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이따금 카게야마는 칼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고는 했다. 칼, 그 칼의 범위는 꽤나 넓었다. 커터칼, 식칼, 과도, 그리고 여러가지의. 그리고는 피를 보고는 했다. 상처가 아예 남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핏방울이 살짝 나오는 그 순간만 보면 자신의 피부에 하던 칼질을 멈추었기에 상처는 곧 아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버릇의 근원은 꽤나 삶을 따라 올라가야만 나왔다. 아버지의 학대로 지쳐있던 어머니는 카게야마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고, 카게야마는 아버지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어느날 카게야마는 피를 보았다. 어머니의 피였다. 진득한 피가 어머니의 손목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 엄마?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 목소리가 닿지 않더라. 아버지는 그런 소식을 뒤늦게야 듣고 달려왔다. 이미 많은 이들이 와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들 앞에서 줄줄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표현했더랬다. 카게야마는 그 순간, 아, 그러면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자해가 습관이 되어버려서. 카게야마는 피를 보아야만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

"토비오쨩, 너 왜 또 피를..."

피 냄새가 끼쳐 저도 모르게 따라온 부실 안에서 카게야마는 커터칼로 저의 쇄골 쪽을 베어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카게야마는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했다.

"...너 내가 어떤 지 잘 알잖아. 왜그러는데."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카게야마는 사과했다. 그리고 오이카와도 제 할일을 찾아 자리를 떴다.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안 하겠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을까. 카게야마는 그리고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피냄새를 따라 온 오이카와의 모습을 보는 카게야마는 어쩌면, 기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

"오이카와상. 좋아해요."

카게야마는 어느날 문득 그렇게 고백했다. 평소보다 진한 피냄새를 쫓아 가본 곳에는 역시나 카게야마가 서있었고, 토비오 너 진짜, 하며 다시 돌아가려 하던 오이카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이카와는 발걸음을 계속 떼었다. 잠시 멈추었지만 평소처럼, 평소 일어나던 일밖에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걸어갔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흘리고 있는 붉은 피를 보며.

그리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절망이 어느정도 담겨 있었을까.

-

오이카와 토오루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며 전화가 뚝 끊겨서 그를 급히 달려오게 만든 카게야마는 멀쩡하게 있었고, 그 외에 어떤 위협도 없어보였다. 장난? 토비오가? 오이카와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게야마를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 때,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상, 제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고백? 오이카와는 그렇게 묻는 카게야마에게서 그것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고백에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 답이 그렇게 듣고 싶었던 것일까. 오이카와는 입을 뗐지만, 첫 단어를 만들기 전에 카게야마가 말을 끊었다.

"딱히 무언가 기대를 하진 않아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까. 저를 누군가가 사랑할 리 없잖아요."

...그렇지만 오이카와상에게는 사랑받고 싶었는데.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갈색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그 표정이 어디선가 결연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살짝 픽, 하고 웃음소리를 내었다. 오이카와상, 예전에 그러셨죠.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고. 피 냄새를 맡으면. 그리고 카게야마는 칼을 들었다.

"이렇게라도 하면, 저라는 사람에 사랑을 느낄 정도로 강한 충동에 빠지실까요."

날카로운 단도였다. 대체 그것을 어디서 구한 거냐고, 하지 말라고, 오이카와는 그 질문들 중 어떤 것도 묻지 못했다. 묻고 말려야하기에 말할 것이 많았는데도 오이카와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피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코를 막고 입을 막는 데에 급급했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손목을 깊게 그었다. 피는 멎을 줄 몰랐다. 그렇지만 카게야마는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강렬한 고통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딱 하나.

오이카와상, 저를 사랑해주세요.

그런 눈으로, 입을 막고 상대에게 느끼는 충동을 견딜 수 없어하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이미 붉은 눈을 하고, 참으려고 애쓰는 듯한 울어버릴 것만 같은 눈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는 것 같아서 카게야마는 기뻤다. 정말로 기뻤다.

오이카와가 마지막으로 본 카게야마의 모습은, 기쁜 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피를 가득 흘리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었다.

-

햇빛이 비쳤다. 오이카와는 눈을 떴다. 눈부신 햇빛이 그의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일으킨 몸, 햇빛에 익숙해져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된 눈, 껄끄러운 촉감이 느껴지는 눈,  그리고, 제 기능을 찾은 코가 느끼고 있는 피냄새. 오이카와는 순간 코를 막고 눈을 감았다. 향과 함께, 기억이 쏟아져들어왔다.

마지막에,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더라.

오이카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꿈이었기를,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아,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