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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히나] 여름, 그리고 태양
HAEY
2016. 12. 25. 01:50
[카게히나] 여름, 그리고 태양
*지나가는 글쟁이(i0ij0i)님과 한입(@I_factory_01)님과 함께 했습니다.
(한입)카게야마 시점 : http://ifactory01.tistory.com/1
나는 어느날 눈을 떴다. 시야가 온통 푸른빛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 떠보았다. 향긋한 숲의 향기가 나를 가득 채우는 듯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레 발을 들어 바닥을 밟았다. 바닥에는 풀이 가득 자라있었다. 나는 그 생경한 촉감에, 간지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발을 떼었다. 그러나 발을 계속 떼려 몸을 들어도 다시 나는 풀을 밟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어도 제자리인 느낌이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잔뜩 자라있었다. 그늘이 짙었다. 나는 그 녹빛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내가 '하늘'을 보게 된 것은 더 많이 걷고 걸은 뒤였다. 햇빛이 눈부셨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다시 떴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 같이 걸어 다니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 해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것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풀숲에 누워 그 시원한 공기를 들이키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게 즐거웠다.
사람들은 서로를 무언가로 호칭하고는 했다. 나는 무엇으로 불릴까?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으니 있어도 소용이 없으려나? 나는 어쩌면 사람들이 나와 대화해주지 않는 것은 나에게 이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나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떠오른 것은 히나타, 히나타 쇼요.
나는 히나타 쇼요, 말을 걸어주세요.
그렇지만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나는 정말로 외로웠다. 그렇지만 내가 기운을 잃고 우울해한다면 정말로 나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힘을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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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는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래서 그 애를 봤을 때 괜히 반가웠다. 먼저 말을 걸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또 무시당하지 않을까? 나는 입을 다물고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나무 아래에 쭈그리고 있었다.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의 햇볕은 꽤나 따가웠다. 그렇지만 나무가 제일 울창한 때이기도 했다.
나는 햇빛을 피해 계속 그곳에 있었다. 나무 그늘은 시원했다. 그렇지만 지루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냇가에 가보기로 했다. 오늘따라 더 더운 것 같다. 냇가에서 몸이라도 담가볼까. 그리고 돌멩이로 탑도 쌓아보고 싶었다. 저번에는 높이 쌓다가 누군가 와서 숨어버렸었지. 오늘은 그날보다 더 높게 쌓아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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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그 애다. 나는 괜히 반가웠다. 아까 조금 전에 본 그 아이가 냇가에 이미 와있었다. 냇가에 앉아 발로 물을 차고 있다. 꽤나 부루퉁한 표정이다. 심심한 걸까? 혼자 손장난을 치기까지 하는 그 애에게 나는 괜스레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뭐해?"
그러면서 빤히 바라보았는데, 표정이 꽤나 놀란 듯 했다. 나를 보았다. 나를 보았어! 나는 무척 기뻤다. 나를 보고 놀란 게 맞겠지? 나는 혹시 내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고개를 돌려보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 아이가 보고 놀랄 만한 상대는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 할머니 집에 왔는데 집에 앉아만 있으니 너무 심심해서 나왔어…"
그리고, 내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그래서 나는 활짝 웃었다. 냇물에 나의 얼굴이 살짝 비친 것도 같았다. 나는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말을 걸어주었어, 안녕! 반가워! 나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나의 말에 대답해 준다면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이리저리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하기로 했다. 꼭 해보고 싶었어.
"나는 히나타 쇼요! 여기에 살아. 너는?"
나는 아이의 이름이 듣고 싶었다. 세상에, 정말 이름을 교환하는 걸까? 이름을 알려줄까? 이렇게 하는 것이 맞겠지?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대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다가, 눈을 한번 깜빡거린 뒤에 입을 열었다, 아- 나를 향한 목소리란 이렇게 행복한 거였구나.
"카게야마 토비오."
나에게 건네진 이름이란 것이 너무나 소중해서, 나는 몇 번이고 그것을 곱씹었다.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 토비오-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아, 행복해. 나는 해보고 싶은 말이 더 남아 있었다.
"나랑 놀자!"
나는 그날 처음, 친구라는 것을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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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붉은 저녁노을이 져가고 있었다. 나는 카게야마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풀밭을 같이 것도, 냇가에서 같이 물장구도 치고, 나무를 타기도 했고, 여러 가지 열매들을 따서 먹기도 했고, 부셔서 손을 색색깔로 물들이기도 했다. 이건 먹으면 되게 신맛이 나, 이건 단맛, 이건 약간 써. 카게야마는 숲을 잘 아는 나에게 감탄스럽다는 눈빛을 했다. 나는 괜히 뿌듯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헤어질 시간인 모양이었다.
"내일 또 올게."
카게야마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가득 차서 손을 흔들었다. 내일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아, 이게 설렘일까. 나는 풀숲에 누웠다. 그 촉감이 새삼스럽게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다. 아, 너의 눈의 색깔 같아. 카게야마는 살짝 밝은 밤하늘의 눈과, 깊은 밤하늘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색은 어떤 색일까? 카게야마에게 내일 물어봐야지. 나는 카게야마의 얼굴과, 그 목소리와, 그리고 그 이름들을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
"너는 태양을 닮았어."
나는 며칠 뒤에야 내 눈과 머리가 무엇을 닮았냐고 물었다. 그 애와 노는 게 너무 즐거워서 질문해야한다는 걸 까먹은 탓이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색이 밤하늘을 닮았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고는, 나의 색을 묘사해주었다. 태양. 태양. 나는 그런 색이구나. 응, 너는 눈도, 머리도 태양의 색처럼 반짝반짝해서 예뻐. 카게야마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카게야마를 안았다. 카게야마는 당황하더니, 이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표정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정말로, 상냥한 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카게야마는 거의 항상 들뜬 표정으로 냇가에 왔는데, 어째서 오늘은 꽤나 어두운 표정이었다. 살짝 심각해 보이는 듯한 표정에 나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서, 나는 꽤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카게야마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우리 할머니가 여기는 나 같이 어린 애가 살지 않는대. 너는 없는 사람이래."
아. 나는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카게야마는 살짝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무슨 소리야 카게야마? 너네 할머니가 뭘 잘못 아시는 거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다.
" 그 말이 진짜야? 그럼 넌 귀신같은 거야? "
카게야마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눈빛이었다. 나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기에 입술을 한번 깨문 뒤에 입을 열었다.
"아냐! "
카게야마의 눈이 크게 커졌다. 아냐, 아냐, 난 죽은 존재가 아니야! 나는 부정했다. 어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시야에서 카게야마가 흐려져버리는 것이 싫었다. 난 귀신같은 거 아니야!
아, 너무 소리를 질렀나? 나는 카게야마가 나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나 이제 너랑 안 놀 거야, 소리 질렀잖아, 아니면 너는 귀신이잖아-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옷깃을 잡은 손이 바들거렸다. 카게야마의 눈을 마주치기 무서웠다.
"그래."
어? 나는 눈을 떴다. 카게야마의 눈은 맑았다. 맑고 푸르렀다. 아, 그 맑은 눈동자 안에 비치고 있는 내가 못나보여서 나는 왜인지 부끄러웠다. 그리고, 너는 나를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넌 귀신같은 거 아니야."
나는 울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너는 나를 달래주려 했다. 야, 울지 마. 울지 마. 왜 울어어. 나는 네가 그래주는 것이,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친구의 모습 같아서 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카게야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너는 부드럽게 품을 열어주었다. 품이 따뜻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살짝 멎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던 걸까. 어느새 해가 졌다. 카게야마는 울음을 그치고 호흡을 고르는 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우리는 서로 말을 나누지 않고 땅거미가 진 냇가를 걷기 시작했다. 반딧불이가 찌르르 울었다. 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름 모를 벌레의 구애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침묵했지만, 그러면서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카게야마가 손을 놓았다. 나는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너의 입이 살짝 떼일락 말락하는 것이 보였다. 곤란한 표정을 하며 몸을 돌려 등을 보인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나는 이제 집에 가야하거든."
나는 어쩌면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 눈이 커졌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하나는 밤하늘의 눈이었고, 하나는 빛나는 태양의 눈이었다.
"나, 나 내년에도 올 테니까! 내 후년에도, 그 다음 해도 곡 올 테니까…"
너는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에도 나랑 놀아, 히나타!"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몸에 열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붉었다. 귀여워, 이말을 하려고 그렇게 고민한 건가.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래, 항상 같이 놀자!"
그리고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제일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카게야마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리고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우리의 몸이 닿았다. 쿵쿵, 이건 너의 심장소리일까, 나의 심장소리일까. 그리고 입술이 닿았다. 네가 먼저 나의 입술에 너의 입술을 맞추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반딧불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냇가는 푸르렀다. 아, 초록색, 초록색 입맞춤이다. 나는 그 빛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쿵쿵 대는 것은 아마, 우리 둘 다일 것이다.
네가 먼저 입을 뗐다. 나도 눈을 떴다. 너의 얼굴이 실컷 붉어져 있다. 나는, 글쎄, 몸까지 빨개지지 않았을까. 열이 확 오르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뭐, 뭐하는 거야! 너도 만만찮게 허둥댔다.
"모.. 몰라! 좋아하는 사람한텐 이렇게 하는 거랬어!"
너는 그렇게 말한다. 미치겠다. 심장이 이렇게 뛰다간 죽어버리는 거 아닐까? 나는 고민하면서 물었다. 누가? 너는 꽤나 뜸을 들인다.
"테레비…"
그게 뭐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웃지 마, 웃지 마! 소리치지만, 그 모습마저도 귀엽기 그지없어서 나는 계속 웃었다. 그리고 나의 웃음소리와 너의 웃음소리가 겹치기 시작했다. 힐끗 쳐다본 밤하늘의 색은, 너의 머리 색이였다.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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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나는 그곳을 떠났다. 카게야마가 과연 찾아왔을까? 내가 없다는 걸 알고 슬퍼하고 있을까?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겁쟁이라서, 네가 찾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나는 그 관계가 너무 소중해서, 깨질까봐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떠돌았다. 나는 어떤 존재인걸까. 귀신일까. 그렇지만 나는 죽은 적이 없는 걸.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세상은 별의 별 것이 많았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구경하고, 재미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은 한 곳으로 닿아버린다.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나와 놀고, 나를 안아주고, 나에게 입맞춰준 너.
보고 싶어.
그래, 나는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나는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제 네가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나의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꼭 기다리고 있어줘. 나는 욕심이 많았다.
-
너가, 있다.
너의 뒷모습을 봤을 뿐인데도, 살아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맞아,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살아있다는 기분이 가득 찼다. 그리고 지금도. 너는 키가 컸다. 나는 조금밖에 크지 않았다. 밤하늘 같은 검은 머리는 여전했다. 그리고 너의 밤하늘 같은 눈이 보고 싶었다. 너는 한숨을 쉬며 냇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너의 머리를 헝클인다. 나는 너의 등을 톡톡 쳤다. 그리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 뭐 하고 있어, 카게야마? "
네가 몸을 돌린다. 눈이 커진다. 잊을 수 없던 밤하늘 같은 눈이 아름답다. 너는 곧 놀란 표정을 가다듬고,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 ... 늦었잖아. 멍청아. "
너는 여전했다. 그 말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나는 태양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태양이 눈부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