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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나쁘지 않았어요
HAEY
2016. 12. 17. 23:46
[오이카게] 나쁘지 않았어요
*오이카게 전력 60분 주제 [도서관]
"음……. 모르겠는데요."
"하, 하하하! 토비오쨩은 바보야?"
카게야마는 지금 오이카와와 함께 도서관에 있었다. 카게야마는 정말로, 진심으로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사람, 나를 아주 제대로 놀려먹고 있어! 카게야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오이카와에게 눈초리를 흘겼다. 카게야마는 선배니까, 선배니까 하면서 참는 중이었지만 싫은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정말로, 이 선배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서관인데 조용히 해주시죠."
"그렇지만, 너무, 웃겨서, 하, 하하,"
오이카와는 정말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정말로 짜증이 난 모양인지 눈을 꾹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문제는, 그 표정이 또 웃기다고 오이카와가 웃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도서관 사서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라고 하고나서야 오이카와의 웃음이 멎었다.
"제가 조용히 해 달라 했을 때는 전혀 안 들으시더니."
"그지만 그렇게 말하는 토비오쨩 모습도 웃겨서 전혀 안 멈춰진다고."
"저를 자꾸 웃음거리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그 말에 오이카와는 또 웃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이카와는 간신히 입 박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를 삼키고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운 채로 말을 이었다.
"웃음거리라는 말도 알아?"
아, 정말! 카게야마는 도망치고 싶었다.
-
이 일의 시작은 그래, 카게야마는 과제를 해야 했고, 그저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책을 찾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같은 학교에서 적어놓은 메모를 들고 한참을 헤매던 중이었다. 그리고 한참 맨 윗칸을 훑어보며 옆으로 걸어가던 도중에,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 어?"
"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오이카와 토오루였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이카와상."
카게야마는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오이카와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슬쩍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갈 생각인 것인지 오이카와의 반대쪽으로 걸어 나갔다.
"앗, 나를 보고 그냥 가려하다니, 너무해!"
"제가 과제를 해야 해서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곤란…"
그러면서 슬쩍 멀어지려는 카게야마였지만, 오이카와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카게야마의 어깨를 잡았다. 그 탓에 당황한 카게야마는 말을 멈춘 채로 놀란 눈을 하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라면 오이카와상이 도와줄게,"
오이카와는 무척 기분 좋다는 얼굴이었다. 카게야마와 완전히 반대였다. 카게야마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보다 약간, 키가 큰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눈을 살짝 치켜떴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입에서 나온 것은,
"아… 괜찮은데요."
거절이었다. 그렇지만, 카게야마의 거절은 안타깝게도, 오이카와에게 전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좋아! 이 오이카와상의 머리로 가엾고 멍청한 후배님을 구제해주지!"
오이카와는 눈을 번뜩였다. 그 앞에 서있는 카게야마의 표정 따위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
"그나저나, 토비오쨩이랑 도서관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는 걸!"
"그래서요."
"아, 너무해."
"그래서요."
둘은 이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면서, 둘은 일단 과제에 관련된 책을 찾았다. 둘의 키가 커서 쉽게 맨 끝 칸에 손이 닿았기에 딱히 뭐가 불편한 건 없었다.
"아, 내가 이렇게 키가 큰데 토비오쨩도 왜 이렇게 귀염성 없이 키가 큰 거야?"
"제 키가 뭘 잘못했습니까?"
"찾는 책에 손이 닿지 않아 낑낑거리는 후배를 보며 내가 꺼내줄게, 하면서 그 뒤에서 큰 손으로 후배가 찾는 책을 뽑아주는 그런 판타지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죄?"
"…."
카게야마는 이쯤 되면 무시가 제일 좋은 선택이 아닐까 고민했다. 그리고 책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로 결론 내렸다.
"이거 맞죠?"
"아닌데? 이거는 화학 관련이고, 우리가 찾는 건 물리학 관련 분야잖아."
그러면서 오이카와는 그것이 아닌 이유를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분명 카게야마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엄청 조잘대는 것은 오이카와 쪽임에도, 어째서인지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몇 배로 더 잘 찾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괜히 승부욕을 불태웠다. 그렇지만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비웃듯이 아주 쉽게 찾아내서 가져왔다.
"…선배, 혹시 관련 없는 거 뽑으신 거 아니죠?"
"하, 나는 귀염성 없으신 이 후배님과 다르게도 머리가 좋아서 그럴 일이 없답니다."
말을 말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
둘이 경쟁심을 불태우며(물론 내기였다면 카게야마의 일방적 패배겠지만) 과제와 관련 있는 책을 정말로 많이도 찾아냈지만, 대출 한도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이제 카게야마는 젤 연관성 있는 책을 찾아야 했다. 오이카와는 당연히 내가 도와주지! 라며 의지를 불태웠으니 카게야마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거를 같이 찾아주겠다는거지, 선배가. 이쯤 되면 가실 시간도 되지 않, 까지 카게야마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오늘 시간 아주 여유로운 김에 도서관에서 마음의 양식이라도 섭취해볼까~ 하며 온 거니까, 이제 가실 시간 된 거 아닙니까? 하는 말은 꺼내지 말아줘,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이게 더 낫지 않습니까?"
"음, 카게야마, 너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모르지, 사실?"
"모르면 안 됩니까?"
"토비오쨩, 아하하, 왜 이렇게 당당한 거야!"
그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오이카와의 여러 번의 웃음과 카게야마의 말없는 짜증을 거쳐, 이 상황에 오게 된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도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카게야마는 열을 내며 없는 머리로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였다.
"토비오쨩, 지금 무지 머리 아프지?"
"네."
"잠만 기다려봐."
그리고 열람실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데."
카게야마가 어떻게 그것을 전달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누군가가 카게야마의 등을 툭툭 쳤다. 카게야마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당연하게도(?) 그 누군가는 오이카와였다. 카게야마는 놀래키지 마세요! 라고 소리 지르려다 겨우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가 그런 카게야마를 보면 의아한 표정을 짓다, 이내 웃으며 말을 건네었다.
"뭐야, 그 멍청한 표정은? 토비오쨩, 여기."
오이카와가 건넨 것은 일회용 컵에든 따뜻한 우유였다. 1층 자판기에서 뽑아온 모양이었다. 카게야마는 놀란 눈으로 그것을 받았다. 꽤나 뜨거웠지만 카게야마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마셨다. 살짝 단 맛도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호호 컵을 불며 우유를 마셨다. 오이카와는 본인 몫으로는 캔커피를 들고 온 모양이었다. 그는 그것을 홀짝거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 다 마시고 나면 계속 해보자!"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카게야마는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지 않는 척 하며 시야 끝에 담았다. 그리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기분 좋은 듯 한 미소로 얼굴을 가득 채웠다. 창밖의 하늘이 맑았다.
-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주말이라 열람실의 문은 꽤나 일찍 닫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에요, 라는 사서의 말에 급히 책을 대출했다. 그리고 문을 닫은 열람실을 나오며 카게야마는 빌린 책을 한 아름 품에 안은 채였다. 그것이 꽤나 위태로워보여서 오이카와는 시선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계속 궁금했는데 말이야,"
"예?"
"그 가방은 장식이야?
"…넣으려고 했습니다."
오이카와가 이제는 밖이라고 전혀 참을 생각도 없는 듯, 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생각 못한 게 아니고?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더욱 더 크게 웃었다. 카게야마는 가방을 열었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가 들고 있던 책을 대신 들어주었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이카와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서 눈을 떼고 책을 하나하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오늘 어땠어? 좋았어?"
책을 막 가방에 다 넣고 가방을 똑바로 맨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가 물었다. 어느덧 시간은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이었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한순간 붉어졌다. 그런 카게야마를 보는 오이카와의 얼굴은 기분 좋은 미소로 가득했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며 손을 들었다. 어느덧 둘의 거리가 좀 생겨 있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흔들었다. 잘가요, 오이카와상. 그리고-
"...도서관 데이트도 나쁘지 않았어요."